하늘과바람과별과詩


  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르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안테 주어진 길을
  거러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11.20


  自畵像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저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사나이가 가엽서집니다.
  도로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追憶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1939.9


  少年



  여기저기서 단풍닢 같은 슬픈가을이 뚝뚝 떠러진다. 단풍닢 떠러저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무가지 우에 하늘이 펼처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 보려면 눈섭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손으로 따뜻한 볼을 쓰서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드려다 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속에는 사랑처럼 슬픈얼골──아름다운 順伊의 얼골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어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얼골──아름다운 順伊의 얼골은 어린다.

1939


  눈오는地圖



  順伊가 떠난다는 아츰에 말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나려, 슬픈것 처럼 窓밖에 아득히 깔린 地圖우에 덥힌다.
  房안을 도라다 보아야 아무도 없다. 壁과 天井이 하얗다. 房안에까지 눈이 나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歷史처럼 홀홀이 가는것이냐, 떠나기前에 일러둘말이 있든것을 편지를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거리, 어느마을, 어느지붕밑, 너는 내 마음속에만 남어 있는 것이냐, 네 쪼고만 발자욱을 눈이 작고 나려 덥혀 따라갈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욱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사이로 발자욱을 찾어 나서면 一年 열두달 하냥 내마음에는 눈이 나리리라.

1941.3.12


  돌아와보는밤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불을 켜두는것은 너무나 피로롭은 일이옵니다. 그것은 낮의 延長이옵기에──

  이제 窓을 열어 空氣를 밖구어 드려야 할텐데 밖을 가만이 내다 보아야 房안과같이 어두어 꼭 세상같은데 비를 맞고 오든길이 그대로 비속에 젖어 있사옵니다.

  하로의 울분을 씻을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속으로 흐르는 소리, 이제 思想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 가옵니다.

1941.6  


  病院



  살구나무 그늘로 얼골을 가리고, 病院뒷뜰에 누어, 젊은 女子가 힌옷아래로 하얀다리를 드려내 놓고 日光浴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알른다는 이 女子를 찾어 오는 이, 나비 한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어왓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病을 모른다. 나안테는 病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試鍊, 이 지나친 疲勞, 나는 성내서는 않된다.

  女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花壇에서 金盞花 한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病室안으로 살어진다. 나는 그女子의 健康이──아니 내 健康도 速히 回復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엇든 자리에 누어본다.

 1940.12


  새로운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길 새로운길

  문들레가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길은 언제나 새로운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1938.5.10


  看板없는거리



  停車場 플랕폼에 
('폼'의 'ㅍ'은 원문에서 ''임)
  나렷을때 아무도없어,

  다들 손님들뿐
  손님같은 사람들뿐,

  집집마다 看板이없어
  집 찾을 근심이없어

  빨가케
  파라케
  불붓는文字도없어

  모퉁이마다
  慈愛로운 헌 瓦斯燈에
  불을 혀놓고,

  손목을 잡으면
  다들, 어진사람들
  다들, 어진사람들

  봄, 여름, 가을, 겨울,
  순서로 돌아들고,

1941


  太初의아츰



  봄날 아츰도 아니고
  여름, 가을, 겨울,
  그런날 아츰도 아닌 아츰에

  빨――간 꽃이 피어낫네,
  해ㅅ빛이 푸른데,

  그前날밤에
  그前날밤에
  모든것이 마련되엿네,

  사랑은 뱀과 함께
  毒은 어린 꽃과 함게.

 


  또太初의아츰



  하얗게 눈이 덮이엿고
  電信柱가 잉잉 울어
  하나님말슴이 들려온다.

  무슨 啓示일가.

  빨리
  봄이 오면
  罪를 짓고
  눈이
  밝어

  이브가 解産하는 수고를 다하면  ('이브'의 'ㅂ'은 원문에서 '')

  無花果 잎사귀로 부끄런데를 가리고

  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겟다.

1941.5.31,


  새벽이올때까지



  다들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검은 옷을 입히시요.

  다들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힌 옷을 입히시요.

  그리고 한 寢台에
  가즈런히 잠을 재우시요.

  다들 울거들랑
  젖을 먹이시요.

  이제 새벽이 오면
  나팔소리 들려 올게외다.

1941.5,


  무서운時間



  거 나를 부르는것이 누구요,

  가랑닢 입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나 아직 여기 呼吸이 남어 있소.

  한번도 손들어 보지못한 나를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어디에 내 한몸들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오.

  일이 마치고 내 죽는날 아츰에는
  서럽지도 않은 가랑닢이 떠러질텐데……

  나를 부르지마오.

1941,2,7,


  十字架



  쫓아오든 햇빛인데
  지금 敎會堂 꼭대기
  十字架에 걸리엿습니다.

  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수 있을가요.

  鐘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휫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왓든 사나이,
  幸福한 예수그리스도에게
  처럼
  十字架가 許諾된다면

  목아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여나는 피를
  어두어가는 하늘밑에
  조용히 흘리겠읍니다.

1941,5,31,


  바람이불어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가는 것일가,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理由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理由가 없을가,

  단 한 女子를 사랑한 일도 없다.
  時代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작고 부는데
  내발이 반석우에 섯다.

  강물이 작고 흐르는데
  내발이 언덕우에 섯다.

1941,6,2,


  슬픈族屬



  힌 수건이 검은 머리를 두르고
  힌 고무신이 거츤발에 걸리우다.

  힌 저고리 치마가 슬픈 뭄집을 가리고,
  힌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

1938,9,


  눈감고간다



  太陽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었는데
  눈감고 가거라.

  가진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뿌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었든 눈을 왓작떠라.

1941,5,31,


  또다른故鄕



  故鄕에 돌아온날밤에
  내 白骨이 따라와 한방에 누엇다.

  어둔 房은 宇宙로 通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속에 곱게 風化作用하는
  白骨을 드려다 보며
  눈물 짓는것이 내가 우는것이냐
  白骨이 우는것이냐
  아름다운 魂이 우는것이냐

  志操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白骨몰래
  아름다운 또다른 故鄕에가자.

1941,9,


  길



  잃어 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어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어
  길우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츰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츰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처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프름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길을 것는것은
  담저쪽에 내가 남어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것은, 다만,
  잃은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1941,9,31,


  별헤는밤



  季節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속의 별들을 다 헤일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색여지는 별을
  이제 다 못헤는것은
  쉬이 아츰이 오는 까닭이오,
  來日밤이 남은 까닭이오,
  아직 나의 靑春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追憶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憧憬과
  별 하나에 詩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식 불러봅니다. 小學校때 冊床을 같이했든 아이들의 일홈과, 佩, 鏡, 玉 이런 異國少女들의 일홈과, 벌서 애기 어머니 된 게집애들의 일홈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일홈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푸랑시쓰 쨤」「라이넬마리아릴케 이런 詩人의 일홈을 불러봅니다.  ('푸랑시쓰'의 'ㅍ'은 원문에서 '')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北間島에 게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우에
  내 일홈자를 써보고,
  흙으로 덥허 버리엿습니다.

  따는 밤을 새워 우는 버레는
  부끄러운 일홈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一九四一, 十一, 五.)
  그러나 겨을이 지나고 나의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우에 파란 잔디가 피여나듯이
  내일홈자 묻힌 언덕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 할게외다.


대본: 『하늘과바람과별과詩 ―원본대조 윤동주 전집―』 정현종・정현기・심원섭・윤인석 편주,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