素月詩集


山有花



산에는 꽃피네
꽃이피네
갈 몸 여름 없이
꽃이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큼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요
꽃이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봄 밤



실버드나무의 거무스레한 머리 걸린 낡은 가지에
제비의 넓은 깃날개의 감색(紺色) 치마에
술집의 창옆에, 보아라, 봄이 앉았지 않은가.

소리도 없이 바람은 불며, 한숨지워라
아무런 줄도 없이 섧고 그리운 새카만 봄 밤
보드라운 습기는 떠돌며 땅을 덮어라

 






홀로 잠들기가 참말 외로와요
밤에는 사무치도록 그리워 와요
이리도 무던히
아주 얼굴조차 잊힐 듯해요.

벌서 해가 지고 어두운데요,
이 곳은 인천에 제물포 이름난 곳,
부슬부슬 오는 비에 밤이 더디고
바다 바람이 춥기만 합니다.

다만 고요히 누워 들으면
다만 고요히 누워 들으면
하얗게 밀어드는 봄 밀물이
눈앞을 가로막고 흐느낄 뿐이어요.

 


꿈으로 오는 한 사람



나이 자라지면서 가지게 되었노라
숨어 있던 한 사람이 언제나 나의,
다시 깊은 잠 속의 꿈으로 와라
불그레한 얼굴에 가느다란 손가락의,
모르는 듯한 거동도 전날의 모양대로
그는 야저시 나의 팔 위에 누워라
그러나, 그래도 그러나!
말할 아무 것이 다시 없는가!
그냥 먹먹할 뿐, 그대로
그는 일어라. 닭의 홰치는 소리.
깨어서도 늘, 길거리엣 사람을
밝은 대낮에 빗보고는 하노라

 


꿈꾼 그 옛날



밖에는 눈, 눈이 와라,
고요히 창 아래로는 달빛이 들어라
으스름 타고서 오신 그 여자는
내꿈의 품 속으로 들어 와 안겨라.

나의 베개는 눈물로 함빡 젖었어,
그만 그 여자는 가고 말았느냐.
다만 고요한 새벽 별 그림자 하나가
창틈을 엿보아라.

 


두 사람



흰 눈은 한 잎
또 한 잎
영(嶺) 기슭을 덮을때.

짚신에 감발하고 길짐 메고
우뚝 일어나면서 돌아서도………
다시금 또 보이는,
다시금 또 보이는.

 


못 잊어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 대로 한 세상 지네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 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 한껏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孤寂한 날



당신의 편지를
받은 그날로
서러운 風說이 돌았읍니다.

물에던져 달라하신 그 뜻은
언제나 꿈꾸며 생각 하라는
그 말씀인 줄 압니다.

흘려 쓰신 글씨 나마
언문(諺文) 글자로
눈물이라 적어 보내셨지요.

물에 던져 달라 하신 그 뜻은
뜨거운 눈물 방울방울 흘리며
맘 곱게 읽어 달라는 말씀이지요.

 


닭 소리



기대만 없게 되면
가슴 뛰노는 닭 소리 늘 들어라.

밤은 아주 새어 올 때
잠은 아주 달아날 때

꿈은 이루기 어려워라.

저리고 아품이여
살기가 왜 이리 고달프냐.

새벽 그림자 산란한 들 꿀 위를
혼자서 거닐어라.

 


예전엔 미쳐 몰랐어요



봄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그림자 같은 벗 하나이 내게 있었읍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세월을
쓸데없는 괴로움으로만 보내었겠읍니까!

오늘은 또다시, 당신의 가슴 속, 속 모를 곳을
울면서 나는 휘저어 버리고 떠납니다그려.

허수한 맘 둘 곳 없는 심사에 쓸아린 가슴은
그것이 사랑. 사랑이던 줄이 아니도 잊힙니다.

 


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



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
내게 두고는 당신 때문에 저뭅니다.

해가 산마루에 올라와도
내게 두고는 당신 때문에 밝은 아침이라고 할 것입니다.

땅이 꺼져도 하늘이 무너져도
내게 두고는 끝까지 모두 다 당신 때문에 있읍니다.

다시는, 나의 이러한 맘뿐은, 때가 되면,
그림자 같이 당신한테로 가오리다,
오오 나의 애인이었던 당신이여.

 


먼 後日



먼훈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래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래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풀따기



우리 집 뒷산에는 풀이 풀르고
숲 사이의 시냇물 모래 바닥은
팔란 풀 그림자 흘러요.

그리운 우리 임은 어디 계신고.
날마다 피어 나는 우리 임 생각.
날마다 뒷산에 홀로앉아서
날마다 풀을따서 물에 던져요.

흘러 가는 시내의 물에 흘러서
내어 던진 풀 잎은 옅게 떠 갈제
물살이 해적해적 품을 헤처요.

그리운 우리 임은 어디 계신고.
가엾은 이 내 속을 둘 곳 없어서
날마다 풀을 따서 물에 던지고
흘러 가는 잎이나 맘해 보아요.

 


바다



뛰노는 흰 물결이 일고 또잦는
붉은 풀이 자라는 바다는 어디

고기잡잇군들이 배위에 앉아
사랑노래 부르는 바다는 어디

파랗게 좋이물든 남빛 하늘에
저녁놀 스러지는 바다는 어디

곳없이 떠다니는 늙은 물새가
떼를지어 좇이는 바다는 어디

건너 서서 저 편은 딴 나라이라
가고 싶은 그리운 바다는 어디

 


산위에



산위에 올라 서 바라다보면
가로 막힌 바다를 마주 건너서
임 계시는 마을이 내 눈 앞으로
꿈 하늘 하늘 같이 떠오릅니다

흰 모래 모래 비킨 서창 가에는
한가한 뱃노래가 멀리잦으며
날저물고 안개는 깊이 덮어서
흩어지는 물꽃뿐 아득합니다

이윽고 밤 어둡는 물새가 울면
물결조차 하나 둘 배는 떠나서
저 멀리 한 바다로 아주 바다로
마치 가랑잎같이 떠나갑니다

나는 혼자 산에서 밤을 새우고
아침해 붉은 볕에 몸을 씻으며
귀 기울이고 솔곳이 엇돋노라면
임 계신 창 아래로 가는 물노래

흔들어 깨우치는 물노래에는
내 임이 놀라 일어 찾으신대도
내 몸은 산 위에서 그 산위에서
고이 깊이 잠들어 다 모름니다

 


옛 이야기



고요하고 어두운 밤이 오면은
어스레한 둥불에 밤이 오면은
외로움에 아픔에 다만 혼자서
하염없는 눈물에 저는 웁니다

제 한 몸도 예전엔 눈물 모르고
조그마한 세상을 보냈읍니다
그 때는 지난 날의 옛 이야기도
아무 설음 모르고 외웠읍니다

그런데 우리 임이 가신 뒤에는
아주 저를 버리고 가신 뒤에는
전날에 제게있던 모든 것들이
가지가지 없어지고 말았읍니다

그러나 그 한때에 외워 두었던
옛 이야기뿐만은 남았읍니다
나날이 짙어가는 옛 이야기는
부질없이 제 몸을 울려 줍니다

 


失題



동무들 보십시오 해가 집니다
해지고 오늘날은 가노랍니다
웃옷을 잽시빨리 입으십시오
우리도 산마루로 올라갑시다

동무들 보십시오 해가 집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빛이 납니다
이제는 주춤주춤 어둡읍니다
예서 더 저문 때를 밤이랍니다

동무들 보십시오 밤이 옵니다
박쥐가 발부리에 일어납니다
두 눈을 이제 그만 감으십시오
우리도 골짜기로 내려갑니다

 


임의 노래



그리운 우리 임의 맑은 노래는
언제나 제 가슴에 젖어 있어요

긴 날을 문 밖에서 서서 들어도
그리운 우리 임의 고운 노래는
해지고 저무도록 귀에 들여요
밤들고 잠드도록 귀에 들여요

고이도 흔들리는 노랫가락에
내 잠은 그만이나 깊이 들어도
고적한 잠자리에 흘로 누워도
내 잠은 포스근히 깊이 들어요

그러나 자다깨면 임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 없이 잃어 버려요
들으면 돋는 대로 임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 없이 잊고 말어요

 


임의 말씀



세월이 물과 같이 흐른 두 달은
길어둔 독엣 물도 찌었지마는
가면서 함께 가자 하던 말씀은
살아서 살을 맞는 표적이외다

봄 풀은 봄이 되면 돋아 나지만
나무는 밑그루를 걲은 셈이요
새라면 두 쭉지가 상한 셈이라
내 몸에 꽃필 날은 다시 없구나

밤마다 닭소리라 날이 첫시면
당신의 넑맞이로 나가 불 때요
그믐에 지는 달이 산에 걸리면
당신의 길신 같이 찰릴 때외다

세월은 물과 같이 흘러 가지만
가면서 함께 가자 하던 말씀은
당신을 아주 잊던 말씀이지만
죽기전 또 못 잊을 말씀이외다

 


임에게



한때는 많은 날을 당신 생각에
밤까지 새운 일도 없지 않지만
아직도 때마다는 당신 생각에
때묻은 베갯 가의 꿈은 있지만

낯 모를 딴 세상의 네길거리에
애닲이 날 서무는 갓스물이요
캄캄한 어두운 밤 들에 헤매고
당신은 잊어버린 설음이외다

당신은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비 오는 모래 밭에 오는 눈물의
때묻은 베갯 가의 꿈은 있지만
당신은 잊어버린 설음이외다

 






닭 개 짐승조차도 꿈이 있다고
이르는 말이야 있지 않은가,
그러하다, 봄날은 꿈꿀때.
내 몸에야 꿈이나 있으랴,
아아 내 세상의 끝이여,
나는 꿈이 그리워, 꿈이 그리워.

 


맘 켱기는 날



오실 날
아니 오시는 사람!
오시는 것 같게도
맘 켱기는 날!
어느덧 해도 지고 날이 저무네!

 


하늘 끝



불현듯
집을 나서 산을 치달아
바다를 내다보는 나의 신세여!
바다를 내다보는 나의 신세여!
배는 떠나 하늘로 끝을 가누나!

 


개미



진달래 꽃이 피고
바람은 버들 가지에서 울 때,
개미는
허리 가느다란 개미는
봄날의 한나절 오늘 하루도
고달피 부지런히 집을 지어라.

 


제비 I



하늘로 날아다니는 제비의 몸으로도
일정한 깃을 두고 돌아오거든!
어찌 섧지 않으랴, 집도 없는 몸이야!

 


제비 II



오늘 아침 먼동이 틀 때
江南의 더운 나라로
제비가 울며불며 떠났읍니다.
잘 가라는 듯이
살살 부는 새벽의
바람이 불 때에 떠났읍니다.
어버이를 離別하고
떠난 故鄕의
하늘을 바라보던 제비이지요.
길 가에서 떠도는 몸이기에
살살 부는 새벽의
바람이 부는대로 떠났읍니다.

 


부헝새



간밤에
뒤창밖에
부헝새가 와서 울더니,
하루를 바다 위에 구름이 캄캄.
오늘도 해 못 보고 날이 저무네.

 


萬里城



밤마다 밤마다
온 하룻밤!
쌓았다 헐었다
긴 만리성!

 


樹芽



섧다 해도
웬만한,
봄이 아니어,
나무도 가지마다 눈을 텄어라!

 


失題



이 가람과 저 가람이 모두 치흘러
그 무엇을 뜻하는고?

미더움을 모르는 당신의 맘
죽은 듯이 어두운 깊은 골의
꺼림칙한 괴로운 몹쓸 꿈의
푸르죽죽한 불길은 흐르지만
더듬기에 지친 두 손길은
불어가는 바람에 시키셔요
밝고 호젓한 보름달이
새벽의 흔들리는 물 노래로
수집음에 추움에 숨을 듯이
떨고 있는 물밑은 여기외다.
미더움을 모르는 망신의 맘
저 산과 이 산이 마주 서서
그 무엇을 뜻하는고?

 


비단 안개



눈물에 비단 안개에 둘릴 때,
그때는 참아 잊지 못할 때러라.
만나서 울던 때도 그런 날이오.
그리워 미친 날도 그런 때러라.

눈물에 비단 안개에 둘릴 때,
그 때는 흘몰숨은 못 살 때러라,
눈풀리는 가지에 당치마귀로
젊은 계집 목매고 달릴때러라.

눈들에 비단 안개에 둘리든때.
그때는 종달새 솟을 때러라.
들에랴 바다에랴, 하늘에서랴,
아지 못할 무엇에 취할 때러라.

눈들에 비단 안개에 둘릴때,
그 때는 참아 잊지 못할 띠러라.
첫사랑 있던 때도 그런 날이오
영이별 있던 날도 그런 때러라.

 


愛恭



왜 아니 오시나요.
영창에는 달빌, 매화꽃이
그림자는 산란히 휘젔는데.
아이 눈 깍 감고 요대로 잠을 들쟈.

저 멀리 들리는 것!
봄철의 밀물 소리
물나라의 영롱(玲瓏)한 구중궁궐(九重宮闕) 궁궐의 오요한 곳,
잠 못 드는 용녀(龍女)의 춤과 노래, 봄철의 밀물 소리.

어두운 가슴 속의 구석 구석……
환영한 거울 속에, 봄 구름 잠긴 곳에,
소솔비 내리며, 달무리 둘려라
이대도록 왜 아니 오시나요 왜 아니 오시나요.

 


가을 저녁에



물은 희고 길고나, 하늘보다도.
구름은 붉고나, 해보다도.
서럽다, 높아 가는 긴 들 끝에
나는 떠돌며 울며 생각한다, 그대를.

그늘 깊어 오르는 발 앞으로
끝없이 나아가는 길은 앞으로
키높은 나무 아래로, 물마을은
성깃한 가지 가지 새로 떠오른다.

그 누가 온다고 한 언약도 없건마는
기다려 볼 사람도 없건마는!
나는 오히려 못물가를 싸고 떠돈다.
그 못물로는 놀이 잦을 때

 


반달



희멀끔하여 떠돈다, 하늘 위에,
빛죽은 반달이 언제 올랐나!
바람은 나온다, 저녁은 춥고
흰물가엔 뚜렷이 해가 드누나.

어둑컴컴한 풀없는 들은
찬 안개 위에로 떠흐른다.
아 겨울은 깊었다, 내 몸에는,
가슴이 무너져 내려앉는 이 서름아!

가는 임은 가슴엣 사랑까지 없애고 가고
젊음은 늙음으로 바뀌어 든다.
들가시나무의 밤드는 검은 가지
잎새들만 저녁빛에 희끄무레 꽃지듯 하다.

 


만나려는 심사



저녁 해는 지고서 으스름의 길,
저 먼 산엔 어두워 잃어진 구름,

만나려는 심사는 웬셈일까요,
그 사람이야 올 길 바이없는데,
발길은 누 마중을 가잔 말이냐.
하늘엔 달 오르며 우는 기러기.

 


깊이 믿던 心誠



깊이 믿던 심성이 황량(荒凉)한 내 가슴 속에,
오고 가는 두서너 구우(舊友)를 보면서 하는 말이
「이제는, 당신네들도 다 쓸데없구려!」

 


임과 벗



벗은 설음에서 반갑고
임은 사랑에서 좋아라.
딸기 꽃 피여서 향기로운 때를
고추의 붉은 열매 익어 가는 밤을
그대여 부르라 나는 마시리.

 


紙鳶 (종이연)



오후의 네길거리 해가 들었다,
시정의 첫 겨울의 적막함이어,
우두커니 문 어구에 혼자 있으면,
흰 눈의 잎사귀, 지연(紙鳶)이 뜬다.

 


오시는 눈



땅 위에 샛하얗게 오시는 눈.
기다리는 날에는 오시는 눈.

오늘도 저 안 온 날 오시는 눈.
저녁 불 켤 때마다 오시는 눈.

 


설움의 덩이



꿇어앉아 올리는 향로의 향불.
내 가슴에 조그만 설음의 덩이
초닷새 달 그늘에 빗물이 운다.
내 가슴에 조그만 설음의 덩이.

 


樂天(낙천)



살기에 이러한 세상이라고
맘을 그렇게나 먹어야지,
살기에 이러한 세상이라고,
꽃지고 잎진 가지에 바람이 운다.

 


바람과 봄



봄에 부는 바람, 바람 부는 봄,
적은 가지 흔들리는 부는 봄바람,
내 가슴 흔들리는 바람, 부는 봄,
봄이라 바람이라 이 내 몸에는
꽃이라 순잔이라 하며 우노라

 






새하얀 흰 눈, 가볍게 밟을 눈,
재같아서 날릴 듯 꺼질 듯한 눈,
바람엔 흩어져도 불길에야 녹을 눈.
계집의 마음. 임의 마음.

 


깊고 깊은 언약



몹쓸 꿈을 깨여 도라누울 때,
봄이 와서 멧나물 돋아 나올 때,
아름다운 젊은이 앞을 지날 때,
잊어 버렸던 듯이 저도 모르게,
얼결에 생각나는 「깊고 깊은 언약」

 


붉은 潮水



바람에 밀려드는 저 붉은 조수
저 불은 조수가 밀어들 때마다
나는 저 바람 위에 올라서서
푸릇한 구름의 옷을 입고
불같은 저 해를 품에 안고
져 붉은 조수와 나는 함께
뛰놀고 싶고나, 저 붉은 조수와.

 


남의 나라 땅



돌아다 보이는 무쇠다리
얼결에 뛰어 건너서서
수그리고 발 놓는 남의 나라땅.

 


天里 萬里



말리지 못할 만치 몸부림하며
마치 천리만리나 가고도 싶은
맘이라고나 하여 볼까.
한 줄기 쏜살 같이 벋은 이 길로
줄곧 치달아 올라가면
볼 붙는 산의 불붙는 산의
연기는 한두 줄기 피어올라.

 


生과 死



살았대나 죽었대나 같은 말을 가지고
사람은 살아서 늙어서야 죽나니,
그러하면 그 역시 그럴 듯도 한 일을,
하필코 내 몸이라 그 무엇이 어째서
오늘도 산마루에 올라서서 우느냐.

 


漁人 (고기잡이)



헛된 줄 모르고 나 살면 좋아도!
오늘도 저 넘어 편 마을에서는
고기잡이 배 한 척 길떠났다고.
작년에도 바닷놀이 무서웠건만.

 


귀뜨라미



산 바람 소래.
찬 비 듣는 소래.
그대가 세상고락 말하는 날 밤에,
숯막집 불도 지고 귀뜨라미 울어라.

 


月色



달빛은 밝고 귀뜨라미 울 때는
우드커니 시름없이 잡고 섰던 그대를
생각하는 밤이여, 오오 오늘 밤
그대 찾아 데리고 서울로 가나?

 


不運에 우는 그대여



불운에 우는 그대여, 나는 아노라
무엇이 그대의 불운을 지었는지도,
부는 바람에 날려,
밀물에 흘러,
굳어진 그대의 가슴 속도.
모두 지나간 나의 일이면.
다시금 또 다시금
적황(赤黃)의 포말(泡沫)은 묵괴어라, 그대의 가슴 속의.
암청(暗靑)의 이끼여, 거칠은 바위
치는 물가의.

 


바다가 변하여
  뽕나무 밭 된다고



걷잡지 못할 만한 나의 이 설음,
저무는 봄 저녁에 져가는 꽃잎,
져가는 꽃잎들은 나부끼어라.
예로부터 일러 오며 하는 말에도
바다가 변하야 뽕나무 밭 된다고.
그러하다, 아름다운 청춘의 때의
있다든 온갖 것은 눈에 설고
다시금 남모르게 되나니,
보아라, 그대여, 서럽지 않은가,
봄에도 삼월의 져가는 날에
붉은 피같이도 쏟아져 내리는
저기저 꽃잎들을 저기, 저 꽃잎들을.

 


맘에 있는 말이라고 다 할까보냐



하소연하며 한숨을 지며
세상을 괴로와하는 사람들이여!
말을 나쁘지 않도록 좋이 꾸밈은
닳아진 이 세상에 버릇이라고, 오오 그대들!
맘에 있는 말이라고 다 할까보냐.
두세번 생각하라, 우선 그것이
전부터 미찌고 들어가는 장사일진댄.
사는 법이 근심은 못가른다고,
남의 설음을 남은 몰라라.
말 마라, 세상, 세상 사람은
세상에 좋은 이름 좋은 말로써
한 사람을 속옷 마자벗긴 뒤에는
그를 네 길거리에 세워 놓아라, 장승도 마치 한가지.
이무슨 일이냐, 그날로부터,
세상 사람들은 제가끔 제 비위의 헐한 값으로
그의 몸값을 매마자고 덤벼들어라.
오오 그러면, 그대들은 이 후에라도
하늘을 우러러라, 그저 혼자, 셟거나 괴롭거나.

 


黃燭불



황촉불, 그저도 까맣게
스러져 가는 푸른 창을 기대고
소리조차 없는 흰 밤에,
나는 혼자 거울에 얼굴을 묻고
뜻없이 생각없이 들여다 보노라.
나는 이르노니, 『우리 사람들
첫날 밤은 꿈 속으로 보내고
죽음은 조는 동안에 와서,
별 좋은 일도 없이 스러지고 말아라』.

 


夫婦



오오 아내여, 나의 사람!
하늘이 무어준 짝이라고
믿고 삶이 마땅치아니한가.
아직 다시 그러랴, 안그러랴?
이상하고 별난 사람의 맘,
저 몰라라, 참인지, 거짓인지?
정분으로 얽은 딴 두 몸이라면.
서로 어그점인들 또 있으랴.
한평생이라도 반백년
못 사는 이 인생에!
연분의 긴 실이 그 무엇이랴?
나는 말하려노라 아무려나,
죽어서도 한 곳에 묻히더라

 


나의 집



들가에 떨어져 나가 앉은 메 기슭의
넓은 바다의 물가 뒤에,
나는 지으리, 나의 집을,
다시금 큰길을 앞에다 두고.
실로 지나가는 그 사람들은
제가끔 떨어져서 혼자 가는 길.
하얀 여울 턱에 날은 저물 때.
나는 문가에 서서 기다리리
새벽 새가 울며 지새는 그늘로
세상은 희게, 또는 고요하게,
번쩍이며 오는 아침부터,
지나가는 길손을 눈여겨 보며,
그대인가고, 그대인가고,

 


여름의 달밤



서늘하고 달 밝은 여름 밤이여
구름조차 희미한 여름 밤이여
그지없이 거륵한 하늘로서는
젊음의 붉은 이슬 젖어내려라.
행복의 맘이 도는 높은 가지의
아슬아슬 그늘 잎새를
배불러 기어 도는 어린 벌레도
아아 모든 물결은 복받아 서라.

벋어 벋어 오르는 가시 덩굴도
희미하게 흐르는 푸른 달빛이
거름 같은 연기에 멱감을러라.
아아 너무 좋아서 잠 못들어라.
우굿한 풀대들은 춤을 추면서
갈잎들은 그윽한 노래 부를 때.
오오 내려 흔드는 달빛 가운데
나타나는 영원을 말로 새겨라.

자라는 물벼 이삭 벌에서 불고
마을로 은(銀)솟듯시 오는 바람은
녹자추는 향기를 두고 가는데
인가들은 잠 들어 고요하여라.
하루 종일 일하신 아기 아버지
농부들도 편안히 잠들었어라.
영기슭의 어둑한 그늘 속에선
쇠시랑과 호미뿐 빛이 피어라.

이윽고 식새리의 우는 소리는
밤이 들어가면서 도욱 잣을때
나락 밭 가운데의 아직 있어라.
농녀(農女)의 그림자가 아직 있어라.

달빛은 그무리며 넓은 우주에
잃어졌다 나오는 푸른 별이요.
식새리의 울음의 넘는 곡조요.
아아 기쁨 가득한 여름 밤이여.
삼간집에 불붙는 젊은 목숨의
정열에 목맺히는 우리 청춘은
서느러운 여름 밤 잎새 아래의
희미한 달빛 속에 나부끼어라.

한 때의 자랑 많은 우리들이여
농촌에서 지나는 여름보다도
여름의 달밤보다 더 좋은 것이
인간에 이 세상에 다시 있으랴.

조고만 괴로움도 내어 버리고
고요한 가운데서 귀 기울이며
흰 달의 금물결에 노를 저어라
푸른 밤의 하늘로 목을 놓아라.
아아 찬양하여라 좋은 한 때를
흘러가는 목숨을 많은 행복을.
여름의 어스래한 달밤 속에서
꿈 같은 즐거움의 눈물 흘러

 


대본: 『原本全載 素月詩集』 金廷湜 著 / 崔世祚 編, 省文社, 4291년 (서기 1958년).